“간호사가 환자 복부 절개·심장 마사지”

의사 대신 수술·처방·진료기록 작성 등 전임의 수준 의료 ‘위험천만’
문제 제기 땐 “나가라”…PA 합법화·전문간호사 확대 등 대책 필요

“제가 한 일 중 기록으로 남은 건 아무것도 없습니다. 병원에 입사했고 월급 받아가고, 그게 제 기록의 전부입니다.”

12년차 간호사 A씨는 신규 간호사 시절부터 PA(Physician Assistant·진료보조인력)로 일했다. 외과 소속이었을 땐 수술에 늦는 집도의를 대신해 환자의 복부를 절개했다. 복강 내 배액관을 삽입하는 일도 직접했다. 충수돌기, 담낭, 위장 절제도 그의 몫이었다. 하지만 각종 의무기록에 A씨 이름은 없다. 그가 한 일이 엄연한 ‘불법의료행위’이기 때문이다. 의료법 27조는 의료인이라도 면허범위를 벗어난 의료행위를 할 수 없다고 규정한다. A씨는 “전임의 수준의 불법의료행위를 했다”고 고백했다.

A씨 등 간호사 4명은 국제 간호사의날인 12일 보건의료노조 주최로 열린 좌담회에서 처방, 수술·시술·처치, 진료기록지 작성 등 의사 업무를 대신하는 불법의료행위 실태를 증언했다. 신변 보호를 위해 동물 가면을 쓰고 목소리도 변조했다.

전국의 PA 규모는 약 1만명으로 추산된다. 병원들의 의사 부족 문제가 고질적인 데다 2016년 전공의의 주 80시간 이상 근무를 제한한 전공의법까지 시행되면서 PA 규모는 지속적으로 늘어왔다. 지난해 의대정원 확대·공공의대 설립에 반대하는 전공의 파업 때도 PA들이 있었기에 의료현장이 굴러갔다. 하지만 현행법은 PA 신분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다. 존재하지만 존재해서는 안 되는 사람들이다.

PA를 비롯한 수많은 간호사들이 불법의료행위에 노출돼 있다. 중환자실에서 일하는 11년차 간호사 D씨는 “신규 간호사가 들어오면 의사 아이디(ID)로 처방 내는 법부터 가르친다”며 “욕창이 근육까지 침범했는데도 간호사가 블레이드(칼)로 조직을 잘라내 소독한다”고 증언했다. D씨는 간호사가 의사 대신 환자의 동맥라인(A-line)을 잡다 신경을 잘못 건드려 팔을 절단해야 했던 사례 등을 언급하며 “운전할 수 없는 아이에게 운전하라고 시키는 것과 똑같다”고 했다.

10년차 흉부외과 PA 간호사인 C씨는 “심장수술할 땐 사지에서 혈관을 채취하는 업무도 한다. 수술 중 예기치 못한 상황에서 집도의가 에크모(체외막산소공급장치)를 삽입하는 동안 내가 환자 심장에 손을 넣어 마사지하며 시간을 벌기도 했다”면서 “결국 PA는 아무런 법적인 보호 테두리 안에 있지 못하면서 그저 인력만 제공하는, 쉽게 쓸 수 있는 대체재일 뿐이라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문제를 제기해도 소용없었다. 7년차 중환자실 간호사 B씨는 “(의사에게 문제제기를 하니) 해당 간호사가 근무할 때만 필요하지 않은 오더를 내면서 퇴근할 수 없게끔 보복성 조치를 했다”고 말했다. A씨도 부서 관리자에게 의사와 간호사 간 업무를 명확하게 나눠달라고 요청했다. 돌아온 답은 “네 자리 대체할 사람은 많다. 일하기 싫으면 나가라”였다.

간호사들은 떳떳하게 일할 수 있도록 정부 차원의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미국에는 체계적 교육과정을 거쳐야 자격을 얻을 수 있는 PA와 NP(전문간호사) 직업군이 존재한다. 국내에도 보건·응급·마취·노인·가정·중환자·정신 등 13개 분야에 전문간호사 제도가 있기는 하다. 하지만 의료행위를 어디까지 허용할지가 명확하지 않다. 의료계에서는 전문간호사 제도 확대로 PA를 합법화하는 방안, 의료법 개정으로 의사·간호사 업무를 명확히 정하는 방안 등이 거론된다.

나순자 보건의료노조 위원장은 보건복지부·병원협회·의사협회·전공의협의회·간호협회에 공개 토론을 제안했다. 오는 9월까지 상황이 지지부진하면 총파업에 나설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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