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간 여성들 “죽어도 목소리 낼 것”

‘여성 없는’ 탈레반 내각 규탄 카불 등 곳곳서 시위 이어져 유혈 진압에 최소 3명 사망
“우린 절대 지워지지 않는다”

“나는 탈레반이 두렵지 않다. 죽을 때까지 목소리를 높일 것이다. 서서히 죽는 것보다 한 번 죽는 게 낫다.”

아프가니스탄 카불 도심에서 8일(현지시간) 탈레반의 ‘여성 없는 내각’을 규탄하는 시위에 참여했던 사라(가명)는 영국 BBC에 결연한 의지를 내비쳤다. 그는 탈레반이 휘두른 곤봉에 맞아 어깨를 다쳤지만 다시 거리로 나가 여성의 권리를 요구하겠다고 했다. 자신뿐만 아니라 자신의 딸과 그다음 세대를 위해 더 이상 물러설 수 없기 때문이다.

이슬람 무장조직 탈레반이 전날 여성 장관이 전무한 내각을 발표하자 아프간 여성들이 반발하며 거리로 나오고 있다. 이날 시위에 참여한 여성들은 ‘어떤 정부도 여성의 존재를 부정할 수 없다’ ‘여성이 없는 내각은 패배자’ 등의 팻말을 들고 카불 도심을 행진했다. 지난 4일 탈레반이 살해한 것으로 알려진 임신한 여성 경찰 사진을 들고 있는 여성도 보였다.시위에 참여한 한 여성은 미국 CNN방송에 “여성 장관이 없다는 탈레반의 발표에 항의하기 위해 모였다”고 했다. 또 다른 여성은 “내각 발표는 탈레반이 변하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줬다”고 했다.

시위에 나선 여성들에게 돌아온 건 탈레반의 무자비한 폭력이었다. 탈레반은 평화시위를 하는 여성들에게 총을 겨누고 채찍과 곤봉을 휘둘렀다.

지난 주말부터 카불, 헤라트 등 아프간 주요 도시에서 여성들의 시위가 이어지자 탈레반은 유혈 진압에 나섰다. 이 과정에서 최소 3명이 숨졌다고 BBC는 전했다. 시위를 지켜보던 학생들도 무차별 폭력을 당했다. 한 16세 학생은 CNN에 “시위를 지켜보다가 책가방을 멘 채로 탈레반에 끌려가 구타당했다”면서 “겨우 탈출했지만 다른 학생들은 탈레반에 끌려갔다”고 했다. 시위 현장을 취재하던 기자들도 탈레반에 채찍을 맞고 장비를 빼앗겼다. 언론인 5명 이상이 체포됐다고 BBC는 전했다.

그럼에도 여성들은 물러서지 않고 있다. 한 여성은 “함께 시위를 하던 여성들이 탈레반의 채찍에 맞았다”며 “탈레반은 우리에게 집으로 돌아가 ‘이슬람 토후국’(탈레반의 새 정권 명칭)을 인정하라고 했지만 여성에게 어떤 권리도 주지 않는 정권을 왜 받아들여야 하나”라고 했다. 지아(가명)는 갓난아기를 포함해 자녀 네 명을 기르고 있지만 시위에 계속 나서겠다고 했다. 그는 “가족들이 나의 결심을 지지하고 있다”면서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계속 탈레반에 항의해야 한다. 선택의 여지가 없다”고 했다.

사라는 아프간이 20년 전처럼 여성 인권 암흑기로 돌아갈 것이라 우려했다. 사라는 정부 부처에서 고문으로 일하면서 자신의 사업도 운영했다. 하지만 탈레반이 아프간을 점령한 이후 출근조차 할 수 없었다. 탈레반이 치안을 이유로 보건공공 분야에 종사하는 여성 외에는 어떤 여성도 직장에 나와서는 안 된다고 했기 때문이다.

시위에 나선 또 다른 여성은 “아프간 인구의 절반이 여성이지만 탈레반은 우리를 국민으로 여기지도 않는다. 우리를 채찍으로 때리든, 총으로 쏘든 상관하지 않고 거리로 나와 우리의 권리를 지키겠다”고 말했다.

알리슨 다비디안 유엔여성기구 아프간 부대표 또한 탈레반 정권에 맞서는 여성들을 지원하겠다고 했다. 그는 카불에서 영상 인터뷰를 통해 “여성 권리 인정은 탈레반이 통치하는 아프간이 정상국가로 인정받을 수 있는지 알아보는 리트머스 시험지였다”면서 “탈레반은 기회를 놓쳤다. 우리는 시위를 통해 아프간 여성들이 권리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고 아프간에서 여성들이 절대 지워지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보여줄 것”이라고 밝혔다.

이윤정 기자 yyj@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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